조선시대의 문헌관리와 보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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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11-23 14:5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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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.
세조가 젊고 유능한 문신을 뽑아 예문관직을 겸하게 하여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처하 였으나 예문관으로는 과거 집현전의 기능을 완전히 대행할 수 없었다.
1463년(세조 9) 양성지(梁誠之)의 건의에 따라 장서각(藏書閣)을 홍문관이라 하였는데, 이 때의 홍문관은 장서기관(藏書機關)이었을 뿐이다. 제학 이상은 겸관(兼官)이고, 부제학 이하는 전임관이며, 부제학이 전임관의 수석관(首席官)이다. 조선시대의 정승·판서로서 홍문관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. 결국 1470년에 옛 집현전제도에 의하여 15인의 전임관(專任官)을 예문관에 더 둠으로써 예문관은 종래의 예 문관과 구 집현전의 기능을 겸하게 되었다. 학술·언론기관으로서의 홍문관은 1478년 (성종 9)에 비로소 성립되었다.
홍문관의 연원은 中國 당나라에서 비롯되었다. 예문관의 분관으로서 홍문관에 이양됨으로써 비로소 집현전의 직제와 기능을 이어 그 성립을 보게 되었다.조선시대의문헌관리와보존 , 조선시대의 문헌관리와 보존기타레포트 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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* 홍문관
조선시대 궁중의 경서(經書)·사적(史籍)의 관리와 문한(文翰)의 처리 및 왕의 각종 자문에
응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부. 사헌부·사간원과 더불어 삼사(三司)라 하였다.레포트/기타
설명
조선시대의 문헌관리와 보존에 대한 글입니다.
조선시대에는 학술적인 관부이면서 언론삼사(言論三司)의 하나로서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 기관이었고 홍문관직은 청요직(淸要職)의 상징으로서 일단 홍문관원이 되면 출세가 기약되었다. 그 뒤 고려시대에 들어와 여러 관·전(館· 殿)의 하나로서, 995년(성종 14)에 숭문관(崇文館)을 개칭하여 홍문관이라 하였고 학사를 두었으며, 1298년(충렬왕 24)에는 학사와 직학사를 두었다. 그 직무는 문신 중 재학(才學) 이 있는 자로서 겸하게 하여 시종(侍從)·시강(侍講)하게 하는 것이었다.
홍문관의 직제는 집현전의 직제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. 홍문관은 청요직으로서 그 관원은 지제교(知製敎)가 될만한 문장과 경연관(…(투비컨티뉴드 )
조선시대의 문헌관리와 보존
조선시대의문헌관리와보존
조선시대의 문헌관리와 보존에 대한 글입니다. 옥당(玉堂)· 영각(瀛閣)·청연각(淸燕閣)이라고도 하였다.


